인간의 굴레에서. 이 책을 어떻게 읽게 되었는가. 그것은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이 읽었던 책이라서 읽게 됐다. 굉장히 단순한 이유로 이 책을 읽었으나 이 책은 보통사람이 살면서 생각해 볼 주제들을 여러 부분에서 멈춰서 생각하라고 말한 듯한 느낌을 나에게 주었다. 굴레라는 단어는 무언가에 얽혀있어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살면서 어떤 굴레를 만드는지 생각해 보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습관의 굴레다. 사람은 습관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습관의 굴레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기도 모르게 만든 습관에 따라서 하루의 대부분을 습관적으로 살아간다. 두 번째는 욕구의 굴레다. 인간이란 전부 욕구를 가지고 있어서 그 욕구에 얽혀있다. 식욕이던, 수면욕이던, 성취욕이던, 성욕이던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에 있는 욕구들에 얽매여 있다. 세 번째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아주 큰 굴레인데 사람이 처한 환경에 따라 그 환경에 지배를 많이 받는다. 예를 들면 부모의 유무, 부모의 환경, 주변 가족과 친구들의 영향, 시대적 환경, 부와 가난, 정치와 종교 이런 환경들에 의해 보통의 사람들은 인격이 만들어지고 영혼이 만들어진다. 물론 보통의라는 것을 붙인 이유는 위인이나 성인들은 뭔가 환경을 극복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이런 3가지 굴레에 대해서 작가가 나에게 말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 나는 불교를 접한 적이 많아서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에서 벗어나라는 그 부처님 말씀도 떠오르기도 했다.
출처 : https://ko.dict.naver.com/#/entry/koko/c013b7e7fcba43a8912f517c595d7e8e (네이버 국어사전)
굴레 (명사)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누구나 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하고, 생각하고, 실제로 존재하는지, 내 소원을 들어주실지 마음속에 의문점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도 그러했는데 이 책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필립은 처음에 신이란 존재를 열렬히 사랑하고 의지했다. 필립은 불구라서 학교에서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놀림받고 조롱받으나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맞고 지낸다. 괴롭힘을 너무 당하고 굴욕감을 맛보느라 그만 살고싶어할 정도로 힘들어한다. 이 시기에 필립은 내면으로 시선을 돌려서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법을 익힌다. 그리고 어떤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한 눈을 기른다. 그러던 중 자신의 어려움, 즉 불구로서 겪는 고통을 그만 겪고 싶어 한다. 이때 이런 성경 구절(믿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을 읽고 한참 신앙심이 깊어진 때라서 자신의 불구를 낫게 해 달라는 기도에 온몸을 바친다. 하루하루 신에게 모든 기도를 다 바치고 날짜를 정한 뒤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빈다. 비는 동안에는 짧은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뜻하는 날짜에 자신이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자 필립은 기독교를 버리려고 마음먹는다. 특히 백부에게 이런 문제를 얘기해 봤으나 백부는 경멸할만한 대답만 말해준다. 나도 이 부분을 보면서 어렸을 때 기독교에 대한 내 생각과 비슷한 필립의 생각을 읽고 공감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관점이 달라지기도 했다(신은 없어도 자연이던 운명이던 균형자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이후 필립은 백부와 같은 사제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다른 삶의 길을 찾고자 생각하고 노력한다. 기독교가 삶의 전부였는데 그것을 버릴 때의 마음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 부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이 겪는 문제 중 하나로 보인다.
어떤 인간은 완벽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살아가다 보면 모든 사람마다 최소 한가지씩은 결함이라던지, 불편함이라던지, 약점이라던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이 소설에서의 필립은 불구라는 결함을 가지고 있는데 어렸을 때의 필립은 이 발에 대한 장애 때문에 심하게 놀림받고 조롱받는다. 싸울 수도 없을 정도의 신체적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매일매일 고통스러워한다. 이후 필립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흘러가면서 필립은 사람들의 놀림에 상처를 덜 받게 되고 잘 흔들리지 않게 된다. 청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아예 자신이 불구라는 생각도 스스로는 인식을 하지 않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통해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필립을 놀렸던 기독교 학교 아이들은 생각할수록 괘씸하기도 하다. 어쨌든 필립은 이런 결함 때문에 상처받고 성숙해지는 시간을 보내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와 싸울 때 상대방이 필립을 공격할 최후의 무기는 필립의 불구(발 장애)인데 이건 소설의 마지막 부분까지 나온다. 이걸 보면 사람이 얼마나 잔인한지, 또 그런 잔인한 공격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또 결함을 극복하면 더욱더 성숙해지고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이것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에는 삶을 포기하거나 자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항상 상대방을 배려할 수 있도록 의식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말 어려운 문제지만 의식이라도 계속해야 인격적으로도 성장할 것 같다.
이 결함이라는 것은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성질의 인간의 특성 중 하나인것 같다. 소설 후반기에는 성격이 깐깐한 의사와 일을 할 때도 필립은 아예 흔들리지 않는다. 마치 단단한 산과 같이 상대방의 조롱도 웃음으로 넘기는데 시련을 극복하면 더 단단해지는 이 모습을 보면서 니체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해줄 뿐이다."
필립은 자신이 신앙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기독교의 길을 포기한다. 이후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이곳에서 나는 2가지를 느꼈다. 우선 좋아하는 일이 있어도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면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예로 한 가난한 여자 화가가 그림을 정말 열심히 그렸으나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지 못했고 결국 굶어 죽었다. 필립은 이런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녀와 비슷한 길을 갈까 봐 고민하는데 나 또한 이 부분을 보면서 필립과 비슷한 생각을 해봤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정말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재능이 없다면 나는 이 일을 할까?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렇게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내가 하고 있는 IT 쪽 일이 내 인생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삶을 다 버리면서까지, 목숨을 걸면서까지 코딩을 안 해봐서일지도 모르지만 이 적성과 재능 그리고 생계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만한 주제였던 것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진지하게 내가 이 일에 임하고 있는가도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정말 100% 힘을 다 써본 적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기도 해서 그렇다.
그리고 크론쇼라는 노인화가와 필립이 대화하는 것을 보면서 기억이 나는 부분은 자기희생을 하면서 남을 돕는 그런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해서 남을 돕는 일을 좋아하기 떄문에 한다는 그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이타적인 사람들은 그런 행동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쾌락을 느껴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대화내용이 나오는데 나도 그런 부분에서는 일정 부분 동의한다고 느꼈다. 일정 부분이라고 말한 이유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할 때는 쾌락 때문에 하는 일도 있지만 사명감이나 이것이 어떤 운명적인 일 같아서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건 쾌락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 같다. 사명감의 그 감정은 하늘이 주는 것 같은 느낌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크론쇼와 필립이 나눈 대화도 나에게는 조금 기억에 남았던 부분 같다. 그리고 크론쇼라는 노인화가가 인생의 진실은 양탄자와 같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낚시로 치면 제대로 된 떡밥이다. 이것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데 이 것도 한참 생각해 볼 만한 주제 같다.
이후 필립은 파리에서 2년을 보내다가 재능없는 동료 여자 화가가 굶어 죽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재능이 없다는 것을 그의 선생의 말을 통해 확인한 뒤 화가의 길을 포기한다. 그리고 백부의 집에서 조금 쉬다가 다시 진로를 찾는데 여기서는 유전자의 힘을 믿고 필립은 아버지의 직업이었던 의사를 직업으로 선택한다. 이후 필립은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교를 가는데 정말 악연의 시작이 된 한 찻집에서 밀드레드를 만난다. 그리고 필립은 지독하게 밀드레드와 얽힌다. 밀드레드는 필립이 좋아하는 이성의 타입도 아니고 밀드레드도 필립을 싫어한다. 그러나 필립은 밀드레드를 계속 비이성적으로 쫓아다닌다. 밀드레드는 필립을 가지고 놀면서 농락하는 여자인데 필립의 인생 전체에 여러 번 나타나 그의 인생을 지옥으로 만들어준다. 그럼에도 필립은 밀드레드를 떠나지 못한다.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 잘못? 부부가 된 사람들이 지옥같이 사는 모습이 떠올랐다. 또 살면서 봤던 여러 관계들도 동시에 생각났다. 사람은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밀드레드를 통해 소설은 보여준다. 나 또한 필립이 이해가 안 되면서도 계속 이해가 되기도 하고 그런 감정들을 느꼈다. 사람은 이성적인 면보다 감성적인 면이 앞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밀드레드 문제를 겪으면서 필립은 그동안 읽었던 이성이라던지 철학이라던지 그런 것들이 다 의미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책을 읽을 때는 그렇게도 생각했으나 지금 독후감을 쓰는 시점에서는 다르게 생각했다. 그런 이성과 철학도 경험이든 감정이든 영혼에 각인될 정도로 그 말이 와닿아야 소용이 있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철학과 이성은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글로 읽고 생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마음과 가슴에 울리고 피에 그 말이 스며들어야 효과가 있다. 그냥 글에 있는 문자와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부분을 보면서는 어떤 삶의 원칙을 정하거나 철학을 정립할 때는 마음에 정말 우러나온 것이 아니면 안 정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현대판 주식과 코인의 투자실패를 인간의 굴레에서 봤다. 필립은 한 증권 브로커의 말을 듣고 처음에 투자를 한 뒤 재미를 보지만 이후에는 결과가 또 잘 나올 것이라 생각하고 거의 전 재산을 투자하는데 정말 패가망신한다. 정말 재기할 수 없을 정도였고 자신이 의학교를 다니면서 최소로 있어야 할 재산까지 날리는데 나는 이 부분을 보면서는 작가가 주식도 도박판일 수 있으니 항상 올인하면 패가망신한다라는 것을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유치하게 생각했다. 물론 다음 글에 있을 가난이라는 설정 때문에 이렇게 장치했을 수도 있다.
필립은 앞에 증권투자를 하면서 전 재산을 날리게 되고 의학교도 포기한다. 이후 정말 노숙자가 되어 밖에서 자고 굶으면서 지낸다.
여기서 필립은 굶어죽을 지경에 와서야 친구들한테 돈을 빌려서 밥을 조금씩 먹는다. 그동안 수치심 때문에 돈도 빌리지 못하지만 이후 필립은 생존이 절박해져 이런 상태까지 왔다. 그러던 중 필립은 백부가 나이가 많고 빨리 죽어서 자신한테 유산을 줬으면 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동안 윤리적이었던 필립은 극도의 가난과 굶주림 앞에 마음의 양심도 많이 버린 상태였다. 이 부분을 보면서 사람의 동물적인 부분, 또 동물과 다른 부분에 대해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필립이 너무 답답해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평생 중산층 이상의 삶만 살던 필립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도 일부분 이해가 됐다. 그러다가 일요일에는 매번 애설니?의 집에서 밥을 먹었던 것을 기억해서 필립은 애설니의 집에 가는데 애설니가 필립이 궁핍하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숙식을 제공한다.
여기서 이 부분을 읽고 생각했던 부분은 굶주림과 윤리에 대해 생각했는데 윤리란 굶주림이 해소되어야 지킬 수 있는 것인가? 라는 것과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 중 저런 극한의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라는 궁금증이 들었고 그래도 대부분 굶주림 보다 윤리를 선택했기 때문에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 바뀌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나름대로 생각했다.
그리고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을 도울 사람은 사람밖에 없다라는 사실도 떠올랐다. 결국 사람은 사람끼리 동족이고 좌절에 빠질 때 옆에서 도울 수 있는 것은 같은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나라와 조직을 뛰어넘어 사람을 돕는 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필립은 현대에서 볼 수 있는 월급쟁이의 삶을 산다. 의류상회로 취업한 필립은 발 한쪽이 불구고 또 경험이 많이 없어서 단순 반복적인 일(의류상회의 옷의 위치를 알려주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에 의류 디자인을 잘해서 의류 디자이너 일을 하게 되는데 이 일도 결국 앞에서 필립이 파리에서 화가생활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역시 월급쟁이의 삶은 몇 십 년 전에도 똑같구나 라는 생각을 했고 인생의 여러 부분은 점처럼 이어져 있다는 잡스의 말도 잠깐 생각났었다 모든 부분이 연결되어 있어서 나중에 이게 어떻게 연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러면서 월급쟁이를 하면서 필립은 당장의 생계는 해결됐지만 비전이 없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조용한 절망속에 빠져있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나도 직장을 다닐 때 저렇게 주말만 기다리고 퇴근시간만 기다리던 그런 시절이 떠올랐다.
월급쟁이던,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던 일을 하고 직업을 가진다는 것은 월급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고 사회의 일부분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 전체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분이기 때문에 사명감 같은 것도 가지고 있어야 그 일을 오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잠깐 생각해 봤다.
나는 이책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가 백부라는 캐릭터인데 기독교 사제?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전혀 신앙심 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냥 욕심 많은 목사인 척하는 할아버지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자기에만 집중하고 필립이 궁핍하게 있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 실제로 필립이 노숙자생활을 할 때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백부는 필립을 도와주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자신이 죽을 날이 다가오자 자신이 신을 안 믿는다는 것을 증명하듯 죽음을 두려워한다. 자신이 떳떳하고 죽으면 천국에 가는데 왜 두려워할까? 천국은 이론상으로 현실 세상보다 더 좋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이 글을 쓰면서 잡스가 한 말 중에 기독교 믿는 사람들도 죽어서까지 바로 천국에 가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도 기억이 났다. 여하튼 삼천포로 글이 빠졌지만 백부는 그렇게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밀떡과 포도주 즉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먹는 그 음식을 먹고 나서는 평온해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그가 기독교를 정말 믿은 건 맞구나?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성경에 있는 그런 내용을 믿었으니까 죽기 전에 그런 평온함을 얼굴에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필립은 백부의 죽음으로 인해 의류디자이너를 그만두고 다시 의학교로 돌아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잠깐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읽었던 작은 밀알 하나가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백부가 죽음으로서 필립은 다시 새 인생을 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는 인생의 무상함과 쓸쓸함 그리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작 이런 단어들이 생각났다.
필립은 백부의 유산을 받고 의학교에서 의사과정을 잘 마친다. 이 과정 동안에도 밀드레드를 2번 정도 만나서 지옥을 2번 겪지만 잘 헤어진다. 이후 필립은 그동안 매일 방문하던 애 설리의 집에 똑같이 방문하면서 편안함과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다가 잠깐 바닷가에 있는 노인의사의 보조의사로 계약직으로 일하기 위해 떠나는데 여기에서 깐깐한 노인의사와도 잘 지내서 좋은 시간들을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 깐깐한 노인의사에게 동업 제안도 받는데 필립은 우선 거절하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간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필립이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이 그를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음을 볼 수 있다. 왜냐하면 깐깐한 노인의사가 필립에게 심술궂게 대하지만 필립은 웃으면서 잘 행동하고 조화롭게 일을 한다. 나도 이런 필립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다. 나도 내 나이를 봐서는 현재 단단해 있어야 하는데 갈대같이 너무 자주 흔들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라리 단단해지려면 많은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어야 단단해지나?라는 생각도 했다. 왜냐하면 공상 같은 글과 마음으로는 단단해지기 어렵고 어떤 시련을 겪고 극복하면 단단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애설니와 자주 어울리다 보니 어느새 휴가도 같이 갔고 장녀인 샐리도 어른이 되고 난 뒤 필립과 눈이 맞아서 사귀게 된다. 이후 필립은 자신의 원래 꿈이었던 공상 속에 세계를 여행하는 멋진 의사, 그리고 꿈의 화가를 만날 생각으로 살던 꿈을 버리고 샐리와 결혼할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샐리가 임신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 필립은 모든 꿈을 버리더라도 샐리와 사는 삶이 자신이 찾던 꿈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는 작가가 독창적인 예술가의 삶도 성공적일 수 있겠지만 이런 평범한 가정과 소박한 삶 속에도 행복이 있고 인생의 진리가 있다 이런 것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양탄자도 각각 무늬가 다르고 독창적인 양탄자가 있지만 무늬가 없는 양탄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슬쩍 얘기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나도 이 부분을 보면서 명예, 부, 권력 이런 것들이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 중의 하나지만 정작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은 행복한 가정이라던지 소박한 삶속에 진리가 있을 수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마지막 부분은 아직 내가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판단을 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소박함과 평안함, 평범함도 사람들이 찾던 양탄자 중 일부다.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것도 큰 목표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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